영화 콜럼버스 리뷰 - 건축의 미학, 존 조라는 배우, 힐링 영화로서의 구조, 독립 영화 시장에서 이 영화가 가진 의미.
건축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건축은 그저 배경이라고 생각할테고, 보통은 그게 맞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라는 영화는 바로 그 건축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는 이 영화가 왜 로튼 토마토 96%를 기록했는지, 영화를 보고 나면 납득이 됩니다.
건축의 미학
영화의 배경인 인디애나주 콜럼버스는 실제로 현대 건축의 성지로 불리는 도시입니다. 인구 5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에 에로 사리넨, I.M. 페이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냐면, 20세기 중반 지역 기업인 J. 어윈 밀러가 공공건물에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유치하는 프로그램을 후원하면서 이 도시가 건축 박물관이 됐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가 단순히 예쁜 배경을 빌려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독 코고나다는 미장센을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미장센이란 쉽게 말해 카메라 앞에 놓인 것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인물이 건물 앞에 서는 방식, 창문 프레임 안에 얼굴이 잘리는 방식, 좌우 대칭으로 구성된 건물 앞에서 인물이 얼마나 비대칭적으로 서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전부 의도된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콜럼버스의 건축물과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싱그러운 녹음이 어우러지는 장면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정지 화면으로 멈춰둔 채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힐링은 대사에서 오는 게 아니라 시각적 요소에서 온다고 느꼈습니다.
존 조라는 배우
저는 존 조라는 배우에 대해 사실 잘 모릅니다. 제가 본 어느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었는데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아마 이 영화에서 처음 본 게 맞을 겁니다.
진이라는 캐릭터는 말이 많은 인물이 아닙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도 뭔가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존 조는 그 침묵을 연기합니다. 사실 대사로 전달하는 것보다 눈빛, 몸짓으로 전달하는 게 더 어려운 연기라고 감히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존 조라는 배우는 좋은 첫인상으로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 안에서 한국어를 쓰는 장면도 있어서 꽤 반갑더군요. 조금 서툰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영화 안에서 만나는 한국의 아이덴티티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한국계 배우가 주연으로 서고,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렇게 설레게 느껴질 줄은 몰랐더랬죠.
평론가들이 "왜 이제야 주연으로 주목받았는가"라고 했던 건 과장이 아닙니다. 존 조는 이 작품 이전에도 꾸준히 활동했지만 할리우드의 캐스팅 관행 안에서 주연 자리를 잡기 어려웠던 배우입니다. 이 영화는 그 공백이 얼마나 아까운 일이었는지를 증명했습니다.
힐링 영화로서의 구조: 무엇이 치유를 만드는가
[콜럼버스]를 단순히 잔잔한 영화로만 분류하면 뭔가를 놓치게 됩니다. 이 영화가 힐링으로 느껴지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진과 케이시, 두 인물은 각자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안고 있는데, 그 상처의 성격이 정반대입니다.
진은 너무 부재했던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케이시는 너무 현존했던 어머니 때문에 자신의 삶을 미룬 상태입니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상처가 어떻게 서로를 비추는지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상실과 치유라는 주제가 대사로 설명되는 게 아니라 공간으로 느껴진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케이시가 특정 건물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장면 하나가, 길게 풀어 쓴 대사 열 줄보다 더 많은 걸 전달했습니다.
독립 영화 시장에서 이 영화가 가진 의미
[콜럼버스]는 저예산 독립영화입니다. 대형 스튜디오 자본이 아니라 제한된 예산 안에서 완성된 작품인데, 이런 조건에서 오히려 독특한 영화가 탄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업적 흥행보다 예술적 실험과 작가 정신을 우선하는 영화 범주에서 이 작품은 탁월한 성취를 보여줬습니다.
코고나다 감독은 본래 영화 비평가이자 비디오 에세이 작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비디오 에세이란 영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비평 형식입니다. 그의 비디오 에세이는 오즈 야스지로 같은 거장들의 연출 방식을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콜럼버스]에서 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고정된 카메라, 정적인 구도, 인물보다 공간을 먼저 잡는 방식 등이 오즈의 스타일을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로튼 토마토 96%라는 수치는 단순한 호감이 아닙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건 장르와 취향이 다른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완성도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이 정도 평론가 지수를 유지하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대중적 흥행보다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되는 편인데,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결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배급 방식이나 독립영화 시장에서의 위상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씨네21 리뷰 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맥락을 알고 보면 또 다른 층위가 보입니다.
[콜럼버스]는 사건 중심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처음 30분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에 몸을 맡기는 순간부터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냥 지나쳤을 건물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됐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조용하고 가장 긴 여운이었습니다. 잔잔한 독립영화 한 편을 찾고 계신다면, [콜럼버스]는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0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