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후기 / 원년 캐스팅 그대로, 디지털 전환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인물들 관계성, 공감의 반경이 넓어진 이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포스터

20년만에 속편이 나온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저도 오래전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작은 기대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캐릭터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더라고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원년 캐스팅 그대로.

원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개봉한 건 2006년입니다.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그리고 감독 데이빗 프랭클까지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캐스팅과 감독이 모두 원년 그대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단순한 IP 재활용이 아니라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여론을 보니 굳이 속편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견을 가진 분들도 꽤 있더군요. 1편이 너무 완결성이 높았기 때문에 속편이 오히려 원작의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면, 적어도 저는 그 우려가 기우였다고 느꼈습니다.

미란다는 여전히 등장하자마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래도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비서의 지적을 받기도 하고, 코트를 직접 옷걸이에 걸지요. 하지만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20년 만에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든 이 캐릭터는, 여전히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앤디도, 에밀리도, 나이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우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속편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 연속성입니다. 전편에서 구축된 인물의 성격, 관계, 서사가 후속작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은 중요하지요. 이 영화는 그 부분에서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1편을 기억하는 관객들을 위한 오마주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 그걸 알아채는 순간마다 즐거움이 추가됩니다.



디지털 전환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깊이 와닿은 건 앤디 삭스의 고민이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도 클릭이 안 되면 의미가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알고리즘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 저는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진 않지만, 여러 SNS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앤디가 스크린 안에서 하는 고민이 스크린 밖에서 제가 하는 고민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잡지 등 종이매체는 주도권을 잃게 된 시대. 한국언론진흥재단 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쇄 매체의 광고 매출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세를 이어 왔으며, 이 추세는 전 세계 공통의 현상입니다. 그 안에서 변화를 겪어야하는 캐릭터들은 충분히 많은 고민과,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미란다 프리스틀리는 바로 그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한때 패션계의 절대 권력이었던 런웨이 매거진이 디지털 플랫폼과 인플루언서 중심으로 재편된 생태계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sns의 발달로 개인 콘텐츠 창작자는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는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들이 패션 잡지 편집장의 권위에 도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에밀리 찰튼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과거 미란다의 첫 번째 비서였던 에밀리가 이제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그룹의 핵심 임원이 되어 런웨이의 존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설정이, 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짜인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력 관계의 역전이라는 서사는 늘 통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20년이라는 시간을 채워 넣었기에 더욱 설득력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인물들간의 관계성

이 영화를 보기 전에 1편을 먼저 보시길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편을 보지 않아도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인물들의 과거 서사를 알고 보면, 변화한 관계성이 주는 쾌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미란다와 에밀리는 상사와 부하 직원에서, 협상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고, 미란다를 떠났던 앤디는 이번엔 동등한 위치에서 다시 맞닥뜨리는 관계입니다. 또한 앤디와 에밀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한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전편을 본 후 속편을 봐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관계성이 있습니다.



공감의 반경이 넓어진 이유

20년 전 1편이 사회 초년생의 성장을 이야기했다면, 2편은 커리어의 정점에서 다시 한 번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1편으로부터 20살의 나이를 더 먹은 관객들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합니다.

서사 구조 측면에서 보면, 이번 2편은 전편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훨씬 두텁습니다. 1편이 주인공의 각성과 선택에 집중했다면, 2편은 여러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 변화에 타협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단일한 주인공의 성장 서사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되는 느낌입니다.

"굳이 속편이 필요했을까"라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지금 이 시점이 아니면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SNS 알고리즘, 인플루언서 생태계, 종이 잡지의 몰락,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미란다와 앤디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흐름에 적응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나 싶습니다.

패션 비주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디올, 생로랑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아이템들이 화면을 채우는 장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습니다. 영화의 무게감과 화려한 비주얼이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도 이 영화가 단순한 속편 이상임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느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마무리하며

미란다도, 앤디도, 에밀리도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판이 달라져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저는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1편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속편도 꼭 봐야 깔끔한 마무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 : (한국언론진흥재단) https://www.kp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