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스! 유 캔] 기본 정보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으니까요. 솔직히 저도 [예스! 유 캔]을 선택할 때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가 건네는 질문이 영화관을 나와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머리 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개봉하자마자 바로 보는 게 꽤 오랜만이었는데,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 제목 : 예스! 유 캔 (원제 : Siblings)
- 개봉 : 2026년 07월 22일
- 국가 : 이탈리아
- 장르 : 라마, 코미디
- 러닝타임 : 96분
- 감독 : 그레타 스카라노(Greta Scarano)
- 출연 : 마틸다 데 안젤리스, 유리 투치
-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란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제한적이거나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보이는 신경발달 조건을 뜻합니다. 영화 속 오마르는 이 조건을 가진 40세 남성인데, 영화는 처음부터 그를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냥 그 사람 자체로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얼마나 많은 전제를 갖고 시작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오마르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건 어렵다"는 방향이었습니다. 그 반응 자체가 이미 편견이라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선택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데,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는 핵심 원칙 중 하나로 다뤄집니다. 보건복지부도 장애인 정책의 방향으로 자립 생활과 자기결정 지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오마르는 이 권리를 이론이 아니라 일상의 갈등 속에서 부딪히며 요구합니다. 그 모습이 교과서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마르가 자신의 꿈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간절하게 구걸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원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합니다. 그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건드렸습니다. "나도 그냥 사람인데요"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족 관계 안에서 사랑이 통제로 변하는 순간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인물은 오마르가 아니라 이레네였습니다. 오마르를 연기한 유리 투치도 훌륭하지만, 마틸다 데 안젤리스가 보여주는 이레네의 복잡함이 더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통제하게 되는 그 구조가 이 캐릭터 안에 정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레네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오빠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진짜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오마르가 원하는 것과 자꾸 엇갈립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주변을 아끼는 마음이 상대의 선택을 가로막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를 현실에서도 꽤 봐왔습니다. 이레네가 답답하면서도 밉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틀린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가족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사랑에서 시작한 걱정이 과잉보호로 이어진다.
- 그 과잉보호가 상대에게는 자신이 무능하거나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 결국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을 통해서야 비로소 서로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레네가 변하는 지점이 영화의 핵심인데, 그 변화가 극적 반전처럼 오지 않고 조금씩 스며드는 방식이라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관계 안에서의 변화란 원래 그렇게 오는 것이니까요.
보호자 번아웃(caregiver burnout)이라는 개념도 영화가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담고 있습니다. 보호자 번아웃이란 돌봄을 지속하면서 소진되는 신체적·감정적 피로 상태를 뜻하는데, 이레네의 표정과 행동 곳곳에 그것이 보입니다. 완벽한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잠시 유보해두는 그 피로감을 마틸다 데 안젤리스가 대사 없이도 잘 전달합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오마르의 꿈 앞에서 구체화되는 방식
"할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쉽게 튀어나오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누군가의 가능성보다 한계를 먼저 떠올리는 데 익숙합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을 향해서는 그 경향이 더 강해집니다. 오마르의 꿈이 "가수가 되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취업이나 독립처럼 사회적으로 설명하기 쉬운 목표가 아니라, 그냥 노래하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을 지키려는 과정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은, 오마르가 무대에 서는 순간보다 그 이전의 준비 과정에서 훨씬 많이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게 만드는 편집 방식이 영화의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완성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향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 말입니다.
포용적 예술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든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방향성을 뜻합니다. 오마르의 꿈은 이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적인 욕망으로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유리 투치의 연기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이런 역할을 맡은 배우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선을 넘나드는지를 꽤 주목해서 보는 편입니다. 과도하게 증상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연기하는 것 모두 위험한데, 유리 투치는 그 균형을 잘 잡았습니다. 오마르가 독특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무리 :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따뜻한 질문
[예스! 유 캔]은 화려한 사건이나 강렬한 반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감정과 관계를 차분하게 쌓아가는 작품입니다. 빠른 전개나 강한 자극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물의 마음을 천천히 따라가며 바라보는 관객에게는 오랫동안 남는 여운을 선사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오마르보다 오히려 이레네였습니다. 오빠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동시에 책임감과 현실적인 부담 속에서 지쳐가는 그녀의 표정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사랑, 미안함, 걱정,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하는 모습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진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좋은 영화는 관람이 끝난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질문을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예스! 유 캔]이 남긴 가장 큰 질문은 "나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판단하거나,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진정한 이해란 대신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스! 유 캔]은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선택해가는 과정과 그 곁에서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큰 울림이 폭발적으로 남기보다는, 마음 한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장애나 가족이라는 주제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선택을 지키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영화를 찾고 있다면, [예스! 유 캔]은 한 번쯤 만나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