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리뷰 - 음악 언어, 이름 없는 주인, 저예산의 진정성,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


영화 원스 포스터


🎬영화 [원스] 기본 정보


로맨스 영화에서 주인공 이름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원스]를 다 보고 나면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는 [비긴 어게인]을 재미있게 보고 같은 감성의 영화를 찾다가 이 작품을 알게 되었는데, 예상과는 꽤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 제목: 원스 (Once)
  • 개봉: 2007년 국내 개봉 (2006년 제작)
  • 장르: 음악, 로맨스, 드라마
  • 감독: 존 카니(John Carney)
  • 출연: 글렌 한사드, 마르게타 이글로바
  • 러닝타임: 86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제작국: 아일랜드



음악이 대사를 대신한다는 말, 실제로는 어떤 의미인가


음악 영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화려한 공연 장면이나 감동적인 무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원스]를 켰는데,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이 영화에는 무대가 없습니다. 거리, 악기점, 작은 녹음실이 전부입니다.

영화에서 음악은 다이제시스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다이제시스란 영화 속 인물들이 직접 듣고 경험하는 음악, 즉 현실 안에 존재하는 소리를 뜻합니다. 배경음악처럼 관객만 듣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고 서로 반응하는 형태로 음악이 흘러가는 겁니다. 덕분에 노래 한 곡이 대사 열 줄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걸 가장 실감한 장면이 악기점에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연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남자가 기타를 잡고 여자가 피아노에 앉아 'Falling Slowly'를 완성해 나가는데, 이 장면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장면의 도입부에서는 "그냥 좋은 노래가 나오겠지" 싶었는데, 막상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이 노래가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지 단번에 이해됐습니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싱어송라이터인데, 중요한 건 그의 노래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사 안에 전 연인을 향한 그리움과 후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걸 여자가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냅니다. 음악이 두 사람의 언어가 되는 구조가 이렇게 완성됩니다.



원스 스틸컷 1


이름도 없는 두 사람이 왜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가


[원스]는 엔딩 크레딧에서도 주인공을 'Guy'와 'Girl'로 표기합니다. 영화 내내 주인공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더니, 엔딩 크래딧에서조차 이름이 없을 줄은 몰랐지요. 이름이 없으면 거리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이름이 없으니까 둘 중 누가 됐든 제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감독 존 카니는 이 영화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남자, 가족을 부양하며 꿈을 미뤄놓은 이민자 여성. 극적인 설정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처럼 다가옵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저도 처음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라면 당연히 고백 장면이 나오고 함께하는 결말로 이어질 텐데, 이 영화는 그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며칠 후에 다시 떠올랐을 때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랑이 꼭 함께하는 결말이어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가 그때서야 제대로 들어왔습니다.

[원스]를 [비긴 어게인]과 비교해 보면 이 차이가 더 확실해집니다. 두 작품 모두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이고, 음악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는 구조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비긴 어게인]이 좀 더 대중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을 향해 달린다면, [원스]는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두 작품을 순서대로 보면 존 카니가 가진 세계관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더 잘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 이런 특징들을 정리해 보면 두 영화가 얼마나 다른 방향을 선택했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비교 항목 원스 (Once)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결말의 방향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열린 결말 성장과 화해를 담은 긍정적인 마무리
음악의 역할 감정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언어 재기의 도구이자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
주인공의 관계 연인이 되지 않는 특별한 동료이자 뮤지션 음악 작업을 함께하며 서로를 회복시키는 파트너
영화의 분위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날것의 감성 세련된 도시 감성과 대중적인 연출



원스 스틸컷 2


    제작비 15만 유로짜리 영화가 대작보다 오래 기억되는 이유


    일반적으로 저예산 독립영화는 기술적 완성도가 낮아서 몰입을 방해한다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형화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원스]는 제작비 약 15만 유로, 한화로 2억 원 남짓한 예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보는 내내 화면의 빈곤함보다는 현장의 생생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핸드 헬드 카메라 기법이라고, 삼각대 없이 카메라맨이 직접 들고 촬영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화면이 약간 흔들리고 구도가 정제되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원스]는 이 방식을 실제 더블린 거리와 결합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덕분에 관객은 영화를 '관람'한다는 느낌보다 두 사람의 일상을 우연히 따라다니는 느낌을 받습니다.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실제 뮤지션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이미 그 자연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연주 장면이나 노래하는 장면에서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감정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음악 속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버스킹(busking), 즉 거리 공연 장면에서도 행인들의 반응이 연출처럼 보이지 않고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서사는, 두 주인공이 데모 앨범을 만들기 위해 연주자를 모으고 녹음실을 빌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담은 장면들이 전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짜처럼 보이고, 음악이 완성되는 순간의 감동도 배로 커집니다. 실제로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부른 'Falling Slowly'는 200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미국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 15만 유로짜리 영화에서 나온 노래가 세계 최대 영화제의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진정성을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원스 스틸컷 3


    마무리 :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 영화


    개인적으로는 [비긴 어게인]보다 대중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도 더 잔잔하고 이야기 역시 조용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시원한 전개나 극적인 감동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성만큼은 오히려 [원스]가 한층 더 깊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보다 다 보고 난 뒤에 계속 생각나는 작품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면 하나, 노래 한 곡이 문득 떠오르고,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특히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Falling Slowly'의 멜로디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비긴 어게인]이 조금 더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음악의 즐거움과 희망을 전한다면, [원스]는 훨씬 조용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영화였습니다. 화려한 연출이나 큰 사건 없이도 음악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비긴 어게인]을 좋아했던 이유가 음악과 사람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감성 때문이었다면 [원스] 역시 충분히 만족하실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영화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지만 분위기와 접근 방식은 분명 다릅니다. [원스]를 보고 나면 [비긴 어게인]이 어떤 감성에서 출발한 작품인지, 그리고 존 카니 감독이 왜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왔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음악 영화를 좋아하시거나 [비긴 어게인]의 여운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면, 그 시작점을 확인해 본다는 마음으로 꼭 한 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처음에는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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