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보
- 제목: 라라랜드 (La La Land)
- 개봉일: 2016년 12월 7일 (대한민국)
- 장르: 로맨스, 뮤지컬, 드라마
- 감독: 데이미언 셔젤
-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존 레전드
- 상영시간: 128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영상미 : 화면 자체가 감정을 말할 때
롱테이크라는 촬영 기법이 있습니다. 이는 편집 없이 카메라를 길게 끊지 않고 이어가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현장 안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오프닝 고속도로 군무 장면이 바로 그 예인데, 직접 보면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저도 처음 극장에서 그 장면을 마주했을 때 "이게 영화 맞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색 보정 작업을 뜻하는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도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계절마다 화면의 색감이 미묘하게 달라지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설레는 시기에는 따뜻한 노란빛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할 즈음에는 차갑고 채도 낮은 색감이 은근히 깔립니다. 대사 없이 색감만으로 감정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재즈 클럽의 조명, 노을 아래 춤추는 장면, 그리고 별빛 가득한 밤하늘 시퀀스까지, 다시 봐도 어느 한 컷도 허투루 만든 느낌이 없었습니다. 미술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스틸 컷 한 장만 뽑아도 작품이 됩니다. 최근 왓챠에서 다시 봤을 때도 그 점만큼은 첫 관람 때와 똑같이 감탄했습니다.
음악과 서사 : 노래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
뮤지컬 영화를 낯설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 장르가 편한 편은 아니었는데, '라라랜드'는 그 거부감을 상당히 줄여주는 구성을 택했습니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에서 노래는 서사를 일시 정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여기서는 다이에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와 넌다이에제틱 사운드(Non-diegetic Sound)가 유기적으로 엮입니다.
다이에제틱 사운드란 화면 속 인물들도 듣고 있는 소리를 뜻하고, 넌다이에제틱 사운드는 관객만 듣는 배경 음악을 말합니다.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전자이고,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 고조될 때 흐르는 오케스트레이션은 후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음악이 이야기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이어가는' 느낌을 줍니다.
저스틴 허위츠의 OST, 특히 메인 테마인 'Mia & Sebastian's Theme'는 영화 내내 변주되며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설레는 피아노 솔로로, 나중에는 묵직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다가오는데, 같은 멜로디인데 들릴 때마다 감정이 다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플레이리스트에 OST를 다시 담은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이 영화를 위해 실제로 피아노를 배웠다고 합니다. 약 6개월간 매일 연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연주 장면에서 손이 건반을 짚는 방식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연기와 연주가 동시에 자연스러운 장면이 흔치 않다는 걸 생각하면 꽤 대단한 준비입니다.
다음은 제가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곡 리스트입니다.
- 오프닝 'Another Day of Sun' : 고속도로 군무. 영화 전체의 에너지를 단 한 방에 압축한 장면
- 'City of Stars' :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지점.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곡
- 'Mia & Sebastian's Theme' : 피아노 테마. 영화 내내 반복되며 감정의 기준점 역할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 엠마 스톤의 원테이크 독창.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흔들렸던 장면
재관람의 가치 :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보게 되는 영화
영화를 두 번째로 봤을 때 처음과 전혀 다른 감정이 드는 작품이 몇 있습니다. [라라랜드]는 그 중 하나입니다. 2016년에는 두 사람의 로맨스가 중심이었는데, 최근에 다시 봤을 때는 꿈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내려야 했던 순간들이 더 크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영화도 같이 성장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습니다.
예술을 통해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는 경험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요. [라라랜드]의 마지막 시퀀스가 딱 그겁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그 장면이 단순히 '슬픈 결말'이 아니라 관객 각자의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영화학적으로 이를 반사적 동일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관객이 스크린 속 인물에게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을 투사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미아의 오디션 실패 장면이나 세바스찬이 타협을 강요받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좌절이나 선택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아카데미 영화연구소(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의 자료에 따르면, [라라랜드]는 개봉 후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으로 분류됩니다(출처: 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
중반부가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합니다. 세바스찬이 키스의 밴드에 합류한 이후 전개가 잠깐 흐름을 잃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뮤지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초반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평점은 10점 만점에 9점 주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 작은 아쉬움을 덮고도 남는 건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입니다. 과장된 감정 표현 없이 눈빛 하나, 말 없는 침묵 한 박자만으로 감정이 전달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게 이 영화를 단순한 뮤지컬이 아니라 진짜 드라마로 만드는 힘입니다.
[라라랜드]는 처음 볼 때와 몇 년 뒤 다시 볼 때 다른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꿈 앞에서 설레는 시기에 보면 응원을 받고, 현실 앞에서 지친 시기에 보면 위로를 받습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지금 당장 보셔도 늦지 않습니다. 이미 본 분이라면 오늘 밤 OST 한 곡만 다시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