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 리뷰 - 생존 본능, 다이나모 작전, 놀란 연출

 

덩케르크 포스터


"Home."

화려한 승리보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병사들에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이 대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제 가슴에 오랜 여운을 남겼습니다.


🎬 영화 [덩케르크] 기본 정보


저는 2017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전투 장면이 이렇게 없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총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해변에서 배를 기다리는 병사들의 표정만 보다가 나온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한 번 더 감상하고 나서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됐습니다. [덩케르크]는 싸우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서운 영화였습니다.


  • 제목 : 덩케르크 (Dunkirk)
  • 개봉 : 2017년 7월 20일 (대한민국)
  •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 핀 화이트헤드, 톰 하디, 킬리언 머피, 마크 라이런스, 케네스 브래너, 해리 스타일스 외
  • 장르 : 전쟁, 드라마, 역사
  • 러닝타임 : 106분
  • 제작국 :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덩케르크 스틸컷 1



생존 본능이 영웅담을 이긴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덩케르크는 액션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꽤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싸움이 아니라 생존 본능, 즉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충동입니다. 생존 본능이란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성보다 먼저 작동하는 본능적 행동 반응을 말하는데, 영화 속 병사들이 배를 향해 달려가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남의 탈출 자리를 빼앗으려는 모든 장면이 바로 이 본능의 표현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토미는 특별한 군인이 아닙니다. 뛰어난 전술도, 영웅적인 대사도 없습니다. 그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평범한 청년입니다. 저는 이 캐릭터를 처음엔 답답하게 봤는데, 다시 보니까 오히려 가장 정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인데, 많은 전쟁 영화는 그 두려움을 너무 쉽게 극복해버리는 주인공을 그려내거든요.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이름 없는 병사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침몰한 군함에서 구조된 뒤 다시 덩케르크로 돌아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그의 모습은 흔히 "겁쟁이"로 읽힐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전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인물이라는 게 맞는 해석입니다. PTSD란 극도의 공포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이후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로, 당시에는 제대로 된 치료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입니다. 영화가 이 인물을 비겁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덩케르크 스틸컷 2


다이나모 작전, 알고 보면 더 무겁다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견이 있는데,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영국군과 프랑스군 약 40만 명이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때 발동된 것이 바로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입니다. 다이나모 작전이란 영국 해군이 민간 선박까지 총동원해 고립된 연합군 병사들을 구출한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 철수 작전을 뜻합니다.

실제로 이 작전에는 군함뿐 아니라 어선, 유람선, 개인 요트까지 약 800척이 넘는 민간 선박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약 33만 8천 명의 병사가 구조되었으며(출처: Imperial War Museums), 당시 영국에서는 이를 "덩케르크의 기적"이라 불렀습니다. 영화 속 도슨 선장이 바로 이 민간 선박들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저는 역사 공부를 좀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숫자를 찾아보니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전에 대해 더 찾아보신다면 아래 포인트들을 먼저 확인해 보시면 좋습니다.

  1. 작전 기간은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약 9일간 진행되었습니다.
  2. 참여 선박 중 절반 이상이 어선, 유람선, 개인 요트 등 비(非)군사 민간 선박이었습니다.
  3. 처음 영국 정부가 목표로 세운 구조 인원은 약 4만 5천 명이었으나, 실제로는 그 7배 이상인 33만 명을 넘겼습니다.
  4. 작전 중 연합군 측 항공기 약 145대, 선박 226척이 손실되었습니다.

이 숫자들을 머릿속에 넣고 영화를 다시 보면, 도슨 선장이 아무 말 없이 배를 몰고 덩케르크를 향하는 장면이 단순한 용기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 역사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두 번째 관람에서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덩케르크 스틸컷 3


놀란 연출, 두 번 봐야 보이는 것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에 대해서는 "복잡하다",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번 두 번째 관람에서 오히려 그 구조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됐는지를 실감했습니다. 비선형 서사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고 여러 시간축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입니다. [덩케르크]에서는 육지(1주일), 바다(1일), 하늘(1시간)이라는 세 개의 시간이 동시에 흐르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합니다.

처음 볼 때는 "왜 갑자기 이 장면이 나오지?"라고 넘겼던 순간들이 두 번째에는 전부 의미 있는 조각으로 보였습니다. 같은 배가 두 다른 시점에서 등장하고, 같은 폭발이 다른 각도에서 반복되면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성이 정말 탁월합니다. 특히 파리어 조종사(톰 하디)가 마지막에 글라이드 비행을 하는 장면, 즉 연료가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엔진 없이 활공하는 장면은 두 번째에 볼 때 그 의미가 훨씬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사운드 설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볼까요. 한스 짐머가 활용한 셰퍼드 톤(Shepard tone)이라는 기법이 있는데, 이는 음악이 계속 상승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무한 루프를 반복하는 청각적 착시 효과입니다. 이 기법 덕분에 영화 내내 긴장감이 한 번도 꺾이지 않는 느낌이 납니다. 실제로 조용한 장면에서도 손에 땀이 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는 걸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이 얼마나 치밀하게 관객의 심리를 조율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영화 음악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작품의 음향 설계는 자주 인용됩니다(출처: BFI Sight and Sound).



개인적인 관람평


[덩케르크]는 전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가 '살아남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영웅 대신 평범한 병사와 시민들의 용기, 그리고 극한의 공포를 압도적인 영상과 사운드로 담아내며 전쟁의 참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냅니다.

전쟁 영화라는 이유로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이 작품은 총성과 폭발보다 침묵과 긴장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화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을 쓰러뜨리는 통쾌함보다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담아냈기에, 기존 전쟁 영화와는 또 다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영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움을 안은 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이야기에 공감한다면 분명 깊은 울림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실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존중하면서도 영화적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연출과 한스 짐머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더해져 시간이 지나 다시 봐도 여전히 높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저 역시 개봉 당시 극장에서 한 번,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한 번 더 감상했는데 두 번째 관람에서도 새로운 디테일이 보였고,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세 번째로 다시 보게 되더라도 같은 감동을 받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9.5점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전쟁 영화의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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